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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탕국? 커피? 가배? 한국 커피 기원과 뜻의 차이 알아보기

by 팅커벨날아라 2024. 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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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커피에 대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정보를 많이 궁금해 하여 양탕국과 커피, 가배에 대한 글을 정리해봅니다. 확인하세요! 

시간 순서로는 가배 - 양탕국- 커피 순으로 불리웠다고 합니다. 

 

 

1. 가배 (咖啡) 

 

한국의 커피 역사는 굉장히 흥미로운데, 서양 문화의 영향을 받아 지금의 커피 문화가 형성되기까지 다양한 변천사를 거쳤습니다.  우선, 커피가 한국에 처음 소개된 것은 조선 시대 후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에는 '가배(咖啡)'라는 명칭으로 소개되었는데, 이는 영어 발음에서 따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당시 커피는 주로 왕실과 상류층 사람들에 의해 즐겨 마셨습니다. 특히, 고종과 세자는 러시아 공관에서 이 음료를 접하고 그 맛을 좋아해 덕수궁에서도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2. 양탕국  - 서양의 탕국이다. 

 

한편, 이 음료에는 검은 색상과 쓴 맛이 있어서 '양탕국'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는데, 이는 한약을 담은 탕국과 비슷한 맛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커피'라는 명칭이 보다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한국어에는 '양-'이라는 접두사를 사용해 서양과 관련된 여러 용어들을 만들어냈습니다. 예를 들어, '양철'은 서양에서 들어온 새로운 재료인 철을 가리키는데, '양-'을 붙임으로써 그 원산지를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양말'이나 '양회' 같은 단어도 서양에서 온 것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를 들어 양행이라는 말도 쓰는 회사 기억나는가?  유한양행이다. 서양으로 다닌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서양탕국? 실제 이렇게는 쓰이지는 않았다. 서양탕국이라는 커피 브랜드가 있다. 

 

 

 

3. 우리나라 최초로 커피를 마신사람 - 고종황제 

 

우리나라의 커피는 선교사들을 통해 들어왔다. 1880년대에 한국으로 들어와 고종은 아관파천 때 손탁이라는 외국인을 통해 커피를 맛봤다. 그리고 커피 마니아가 되었다. 그리고 커피를 하도 자주 마셔서 1896년 독살 시도를 경험하기도 했다. 

 

고종황제가 처음으로 느낀 이 특별한 경험은 그의 환궁 이후에도 계속되어, 덕수궁에서 고종 황제가 대신들을 불러모아 함께 양탕국을 즐긴다고 전해집니다.  바로 가비라는 영화가 이 사건을 다루었죠. 

영화 포스터 안에서도 고종황제는 커피를 마시고 있네요. 

 

 

 

 

4. 우리나라 최초의 카페 - 손탁호텔 

 

 

 

그 이후 손탁은 왕실 사람들만이 즐기던 커피가, 서양식 호텔 '손탁호텔'의 문을 열면서 대중에게도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이 호텔은 구한말 조선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고종 황제로부터 기와집 한 채와 땅을 하사받은 마리 앙투와네트 손탁이 지은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손탁호텔은 울산제일일보에서 소개한 내용에 따르면, 고종 황제의 시대에 건립되었으며 조선 외교의 중요한 사건에 참여한 손탁이 이곳에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를 설립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왕실과 상류층 사람들만이 즐기던 커피 문화가 대중에게도 열렸음을 의미했습니다.

 

 

한국 커피 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이끈 손탁호텔은 그 당시에 어떤 분위기 속에서 커피를 제공했을까요? 이 호텔은 조선 외교의 중요성을 받아 고종 황제로부터 주어진 토지와 기와집에서 커피를 선보였습니다. 이로써 한국 최초의 커피하우스로서 그 역사적인 의미를 과시하게 되었습니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손탁호텔은 당시의 외교적인 분위기와 고종 황제의 인정을 받아 설립된 곳으로, 그 당시에는 어떤 사람들이 모여 커피를 즐겼을지 상상해보기 어렵지 않습니다. 손탁호텔의 커피하우스는 그 당시 시대적인 흐름과 함께 고종 황제의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 한국인들에게 커피 문화를 소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손탁호텔을 통해 한국 커피 문화는 왕실과 상류층에서 대중으로 확장되어가는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손탁호텔의 역사적인 커피하우스는 오늘날의 한국 커피 문화의 시작을 예고한 것으로, 그 당시의 서양식 호텔이 가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어떻게 대중화의 발판이 되었는지 새롭게 생각해볼 만한 주제입니다.